2010년 2월 25일 목요일
2010년 2월13일
2010년 2월 5일 금요일
쥐의 똥구멍을 꿰맨 여공
읽으면서 어쩐지, 내용이 낯이 익다 했다.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하 상절지백)의 업데이트 판이라
한다.
읽은 지 오래 되었지만 어딘지 상절지백의 냄새가 난다 했다.
머리를 굴려야 할 정도의 책은 아니다. 일종의 상식 나열 사전 같다.
아는 내용이 나오면 '아~' 하면서 넘기고, 모르는 내용이
나오면 '음, 이런 것도 있네' 하면서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책이었다.
그런데 왜 제목이 하고 많은 항목 중에.. 그렇게 된
건지는 모르겠다.
읽고 나서 얻은 결론은.
결국 이 책 내용은,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들. 혹은 새롭게 알게 된 사실들의
나열이라 할까.
나열을 하되 나름대로 독특하게 구분을 지은 것 같고,
서문도 조금은 독특하게 쓰여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읽다가 맘에 든 부분이 있어서 살짝 가져왔다.
펼쳐두기..
시도 (언어유희편)
내가 생각하는 것,
내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것,
내가 말하고 있다고 믿는 것,
내가 말하는 것,
그대가 듣고 싶어 하는 것,
그대가 듣고 있다고 믿는 것,
그대가 듣는 것,
그대가 이해하고 싶어 하는 것,
그대가 이해하고 있다고 믿는 것,
그대가 이해하는 것,
내 생각과 그대의 이해 사이에 이렇게 열 가지 가능성이 있기에
우리의 의사 소통에는 어려움이 있다.
그렇다 해도 우리는 시도를 해야 한다.
운두 높은 모자(두뇌 스포츠 편)
여기 우스갯소리가 하나 있다.
<어떤 남자가 병원에 갔다. 그는 운두가 높은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는 자리에
앉아 모자를 벗었다. 의사는 머리털이 빠진 환자의 머리통에 개구리 한 마리가 올라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개구리는
살갗에 완전히 달라붙어 있는 것 같았다. 의사가 놀라서 물었다.
「이게 붙어 있은 지 오래됐습니까?」
그러자 남자가 아닌 개구리가 대답했다.
「참 희한한 일이지요. 선생님? 이게 처음엔 내 발 밑에 난 작은 종기였을 뿐이었는데, 이렇게 커졌으니 말입니다.」
이 농담은 관점의 차이가 어떠한 것인지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우리는 이따금 어떤 사건을
분석함에 있어, 자명해 보이는 어떤 하나의 관점에만 얽매임으로써 그릇된 판단을 하곤
한다.>
접기
의사소통의 문제.관점의 차이.
둘 다 중요한 것 같다.
특히 '소통'이란 코드는 요 몇 년 간 중요시되었던 것이기도 하고.
만약 내가 누군가와 같은 사건을 바라보면서도 생각이 다르다면
의사소통이 잘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서로를 바라보면서 말한다고 해도
결국은 다른 것을 말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고.
북극의 연인들
멜로드라마가 꼭 비극으로 끝나야 된다는 법도 없고, 반대로 희극으로 끝나야 된다는 법도 없다.
하지만 그것이 비극이든 희극이든 끝나고
나서 그 여운은 은근히 오래 간다는 생각이 든다.
구성과 전개가 독특했던 영화라, 그 흔한 '사랑'을 가지고 만들어졌지만.
보면서도 전혀 흔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터였다.
'비극'이라고 미리 신문에서 봤는데, 신문 내용을 잊어버렸고,
영화를 보고 나서 다시 신문을 펼쳐 보았다.
신문지상에 나오는
말로는 , 비극이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다.
영화 중간중간에 평가하려 하지 말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때에 그 여운을 느껴보라고
했다.
무슨 말인지, 영화가 끝날 쯤에 알게 되겠지 하고 일단 보기 시작했다.
영화는 두 주인공. 오토(Otto)와 아나(Ana)의 관점에서 각각 전개된다.
그들은 같은 사건에 대해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고,
서로 다르게 바라본다.
그런 전개 방식이 독특하기도 했지만, 영화에 몰입하는 데 방해가 되기도 했다.
계속 바뀌는 장면들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관객이 계속 생각을 하게끔 만든다.
끝날 때쯤 알게 될 것이라고 미리 말을 하면서도.
특이하게도 이 둘의 이름은 앞에서 읽어도 뒤에서 읽어도 같다.그러한 공통점 때문에 끌렸을까?
그래서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서로를
끌어당기는 힘이 그렇게 강했던 것일지.
아니면 아나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정말 '우연히' 아나 앞에 나타난 오토 때문에, 아나가
오토를 운명이라고 생각하게 된 걸까?
(문득, 영화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사람들은 결국은 비슷한 사람들에게 끌리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끝없이 그리워하지만 결국 안 되는 사랑이 있었으니. 아나와 오토를 가로막는 '장벽'이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지척에
있으면서도 지나치게 되었던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나가 교수에게서 담배를 얻어 피우는 바로 뒤에서, 오토는 신문의 구직란을 뒤지고
있었고,
구직란에서 조종사를 구한다는 광고를 보게 되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오토의 할아버지 역시 조종사였다.
그러나 그는 그냥 조종사가 아닌, 군인이었고,
2차대전 때 발 밑 아득한 곳에 폭탄을 떨어뜨려야 했던 사람이었다.
반면에
오토는 단순 우편 배달부였다.
같은 장면이 여러 번 나오고, 해석은 시청자가 하고.한번만 나오면 왜 그런지 모르니까.
계속
묻게 될까봐 그런 것이었을까?
처음에 신문지가 마구 날리는 것을 보고 내용을 짐작은 했지만,판타지적인 요소도 있었고
(이를테면 스키를 타고
위로 올라가는 남자 등)
이해할 수 없는 장면도 있었고. (어린 오토가 아빠 뺨을 때리는 장면이라든지)
빨간 버스인지 전차인지 모를
것이 계속 나오고
비극이네. 하면서도 이상하게.. 별로 슬프다는 생각도 들지 않고.
슬프다기보다는 뭐라할까. 안타깝다는 생각만이 들었다.
단지 아나가. 조금만 신중했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아나의 눈 속에 담긴 오토의 모습 .
솔직히 그
장면은 안타까움을 넘어서서 공포까지 불러일으켰으니.
일곱 번째 파도(다니엘 글라타우어)
작년에 읽었던 <새벽세시, 바람이 부나요?>의 후속편이다.
잘못 보낸 이메일로 시작된 낭만적인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개인적으로는 <새벽세시.>의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검색을 하다 이 책을 찾게 되었고, 찾아 읽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렸다.
작가는 후속편을 쓰지 않으려 했는데 팬들의 요청으로 인해 2편을 썼다고 한다.
2편을 읽으면서 이 두 사람이 밀고 당기기를 너무 오래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중간도 못 가서 결말이 어떻게 되나 하고, 뒤를 봐야겠다. 지겹다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남들의 이야기를 인내심 있게 듣지 못하는(?)건가. 나와는 상관없는 남들의 이야기를, 줄글의 연속을 보고 있어서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레오는 에미에게 묻는다. 당신에게 부족한 게 무엇인지, 그리고 기타 다른 것도 묻는다.
그들은 하루에 한 가지씩만 묻기로 규칙을 정하지만 때론 규칙을 깨기도 한다.
처음엔 아래처럼 많이 물어보다가, 규칙을 정한 것이다.
내가 당신에게 무슨 소용이 있나요? 내가 당신에게 어떤 존재여야 하나요?앞으로 우리 관계는 어떻게 될까요?우리 관계가 계속되어야 하나요? 계속된다면 종착역은 어디일까요? 우리는 어디로 가는 거죠? 당장 대답하라고는 하지 않을게요. 며칠 여유를 가지고 생각해봐요. 여유를 가져서 나쁠 건 없으니까요. (106쪽)
그에 대한 에미의 대답은 이랬다.
일곱 번째 파도는 예측할 수 없어요. 오랫동안 눈에 띄지 않게 단조로운 도움닫기를 함게 하면서 앞선 파도들에 자신을 맞추지요. 하지만 때로는 갑자기 밀려오기도 해요. 일곱 번째 파도는 거리낌 없이, 천진하게, 반란을 일으키듯, 모든 것을 씻어내고 새로 만들어놓아요. 일곱 번째 파도 사전에 ‘예전’이란 없어요. ‘지금’만 있을 뿐. 그리고 그뒤에는 모든 게 달라져요. 더 좋아질까요, 나빠질까요?
그건 그 파도에 휩쓸리는 사람, 그 파도에 온전히 몸을 맡길 용기를 가진 사람만이 판단할 수 있겠지요(255-256쪽)
본문에서도 인용했듯이. 일곱 번째 파도는 예측할 수 없는 파도라고 했다.
그러나 그 다음 순간, 에미는 일곱 번째 파도라는 것은 없었다고, 환상이었다고 말한다. 이럴 수가.
그런데 읽다가 일곱 번째 파도의 전설이, 7이라는 숫자가.
조금 다르게 본다면 꼭 그들의 오프라인 모임 횟수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에미가 일곱 번째 파도의 전설을 말해 주는 곳은 베른하르트와 다시 합치려고 갔었던 휴양지에서였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이혼을 하고, 레오는 자신이 사랑하려고 '노력'했던 사람과 결별하게 된다 . 이리하여 에미와 레오가 맺어지게 되었다. 결론은 해피 엔딩인데. 에미와 레오의 입장에서 본다면 잘 된 건데 주변인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씁쓸하고 잘 못 된것이다. 한편 , 이들의 이야기는 마치 밤부터 새벽까지 이어지는, 몇 시간째 계속되는 채팅을 보고 있는 듯한 생각도 들었다. 실제로는 거의 2년 가까이 걸렸지만. 결말이 나 버린 마당에 이 이야기는 꼭 하룻 밤 사이의 채팅 같았다, 읽고 나니 전반부보다는 후반부 내용이 생각이 더 많이 나는 것도 있었고. 이들의 만남이 이루어진 계기는 통신의 발달이라는 것도 한 몫하지 않았나 하는 당연한 생각도 들고,
이메일이 아니고, 아마 손편지였다면?
에미 성격상 답답해서(?) 기다리기 힘들어 하는(?) 것이 더 심하게 나타나지 않았을까.
아니면 이야기를 조금 다르게 이끌어나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주인공들의 사랑이 이루어지기 위해 주인공 주변인물들이 피눈물(?)을 흘릴 수도 있다는 뻔한 결론이다.
+)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것이 일반화된 시대에 조금은 고전적인 사랑 이야기를 만나게 되어 외려 신선한 느낌도 ...
더 로드<The Road>중.
셜록 홈즈(2009)
홈즈가 등장하는 다른 영화를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2009년판 셜록 홈즈는 19세기 추리물이라기보다는 21세기 액션영화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접기
펼쳐두기..
원작에 나오는 사람들의 관계도 책과 정확하게 일치하지는 않았다.
특히 아이린은 그 캐릭터가 불분명했다. 그를 돕는 건지 아니면 반대인 건지 .
초반에는 성격이 애매했다.
아이린 역을 맡은 레이첼 맥아담스. 그녀의 액션연기가 돋보였다.
원작에서 아이린은 홈즈를 멋지게 속인다. 그 일 이후로 홈즈는 그녀를 존경하게 되었다.
블랙우드처럼 원작에는 없는(없다고 생각된다) 인물도 있었고.
(원작이 나온 지 오래 되었는데, 그대로 따라가면 재미없겠지.)
사실 홈즈가 하는 짓이야말로 잡혀가고도 남을 짓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경범죄(?)에서 조금 무거운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책에서는 홈즈의 인간적인 면보다는 냉철하고 논리적이고 직업적인 면이 강하게 풍겼는데
(그렇다고 인간적인 부분이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그의 인간적인 면도 조금은 보여 주려 했던 것 같다.
감옥에 갇힌 블랙우드와 대화 중인 홈즈.
이미 5명을 죽인 전과가 있는 블랙우드는,
자신이 다시 살아날 것이고, 범죄가 또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는데...
블랙우드 가 한 말 때문에 얼어버리고 벌벌 떠는 듯한 표정에...
블랙우드의 말을 떠올리면서 바이올린을 켜는 장면은 개인적으로 좀 '깨는' 장면이었다.
영화에서 홈즈는 바이올린 활을 연주용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실제로 그의 음악적 소양(소양이라고 해야 하나)이라든지, 파이프를 애용한다든지,
권총으로 협박, 운동을 좋아하는 것(액션연기는 훌륭했다)
그리고 끈질김, 집중력, 추리력, 진지함은 소설 내용이 어느 정도 반영되었다고 생각되지만.
시계 하나에서 여러 가지를 추리하는 홈즈.
원작에서는 홈즈의 추리 방식을 쫓아가려다 늘 실패만 하고, 사건 일지를 기록하는 왓슨이었지만
영화에서 왓슨은 본업인 의사와 기록자 역할을 넘어섰다.
결국 다시 정리하면,
2009년판 셜록 홈즈는 액션극이고, 원작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고,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장면도 일부 있었으나,
그래도 볼 거리는 꽤 있었다고 생각한다.
+) 책에서 묘사한대로만 한다면 오히려 주드 로가 홈즈 역을 맡았으면 나았을 것이라 생각하는 건 나 뿐일까?
++) 속편에서 모리어티와 대결한다는데, 그 때는 어떤 내용으로 그려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