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23일 화요일

A. 뒤마의 '삼총사'

  뜻이 잘 맞는 사람들은 그들끼리 뭉쳐 다닌다. 그 수가 몇이냐에 따라 부르는 말이 달리 있는데, 이를테면, 어떤 집단 중에 셋이 가장 친하다면 삼총사, 넷이면 사총사, 다섯이면 오총사, 이런 식이다. 이 소설이 언제 우리 나라에 들어왔는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총사’ 라는 말은 흔히 들었던 말이다. 그 말은, 뒤마 소설에서 비롯되어 유행한 것일까?

   어쩌면 우리에겐 ‘총사’보다 ‘형제’가 더 익숙할 수도 있다. 독수리 오형제, 임꺽정과 일곱형제들.. 어디선가 들어봤던 제목일 것이다. ㄱ사 요약본을 먼저 읽어버려서(요약본이지만 기본 줄거리는 그대로 유지해 놓았다. 너무 빼 버려서 이건 뭘까 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어떤 장면이 삭제되었을까 생각하면서 읽어 봤다. 삭제된 장면은 상상 이상이었다. 요약본과 다른 점은, 소설이 시작되기 전에 머리말이 달려 있는 것이었다. 그 덕에 뒤마가 어떤 책을 참고해서 이 소설을 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전에 본 만화가 생각났다. 그 애니메이션은 사람 대신 개들이 사람처럼 나오는 것인데, 개한테 다르타냥 등의 이름을 붙인 것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도 생각나는 한 장면이 있다. 개 한 마리가 이만 물러가겠다고, 뒷걸음치면서 오른발을 올렸다 내렸다를 서너번 반복하다가 그만 문하고 부딪히는 장면이었다. 다른 하나는 사람들이 나오는 것인데, 아마 재방송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끝까지 다 틀어주지 않고 끝난 것 같다. 소설에 나오는 인물 외에 새로 허구 인물 몇몇이 추가되고, 줄거리도 약간 달랐던 것 같다. 지금까지 만들어진 영화만 해도 10편이 넘는다고 하는데, 영화는 못 봤다. 그 대신 ‘아이언 마스크’를 봤는데, 그것도 정식으로 본 것이 아니라 텔레비전에서 ‘주말의 명화’ 이런 걸로 틀어 주는 것을 중간부분부터 본 것 같다. 거기 익숙한 이름 몇 개가 나오지만, 배경은 ‘삼총사’와 달리 루이 14세 때인 것 같다. 해설에도 나와 있지만, 삼총사 3부작 중 첫 번째 소설인 이것은 시골 청년 다르타냥이 어떤 일을 겪고, 어떻게 행동하며, 어떻게 출세하는지를 보여준다. 동시에 프랑스와 영국 간의 갈등, 그리고 루브르 궁 내부의 갈등…등 여러 가지 갈등 양상을 보여준다.

  나는 책이 두꺼우면, 다 읽지 못하고 반납할 때를 대신해서 이야기 맨 뒷부분이나 해설편을 먼저 읽어버릴 때가 있다. 그렇지만, 이번엔 순서대로 읽어 버렸다. 그리고 나서 해설까지 다 읽었다. (그런데, 이해를 못하겠다)
주인공은 다르타냥이지만, 작가는 주인공 이외의 다른 인물들도 골고루 배치해 놓았다. 루이 13세와 안느 왕비, 리슐리외 추기경, 트레빌 등의 인물에서부터, 이름만 나오고 실제로는 등장하지 않는 인물들까지.


  읽으면서 의외다 싶은 생각이 든 부분은, 자존심 없는 귀족과 왕족을 묘사한 부분이었다. 가난하지만, 왕 앞에서 돈을 받는 것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다르타냥, 그리고 무슨 이야긴가를 하다가 “사실 나도 돈이 없어” 라고 말하는 안느 왕비.(뒤마는 이 부분에서 자기자신의 목소리를 낸다. 이 말을 이해할 수 없다고.) 그리고 아무리 잘 사는 집안 자제일지라도 귀족 아가씨의 도움을 받는 것을 당연시하는 풍조, 언제 끝나버릴지 모르는 애정 관계를 값비싼 선물로 덮어버리려는 여자들 이야기를 한 부분도 있었다. 다르타냥과 그 친구들은 군인이면서 동시에 귀족이라(총사대원 모두가 이렇지는 않았겠지만), 소득이나 월급도 어느 정도는 나올 텐데, 왕 앞에서 손 벌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루이 13세는 다르타냥을 칭찬하는 동시에 다르타냥의 출신 지역 사람들은 가난하다던데 이런 말까지 한다. 내가 다르타냥이었다면 상당히 기분 상했을 말인데, 다르타냥은 이 대목에서 화를 내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이런 부분도 있다. 보통 추기경 하면 고령의 나이에 의자에 깊숙이 앉아서, 영적인 싸움을 하는 사람으로 보이는데(뒤마도 후세인들이 생각하는 추기경의 이미지를 대략 이런 식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소설에 나오는 추기경은 군인이면서 동시에 정치가이기도 하다. 지칠 줄 모르는 체력에, 왕과 왕비를 제 손 위에 놓고 주물럭거리는 인물이다. 요즘 추기경의 이미지와는 상당히 다르다. 이 리슐리외라는 인물은, 소설 상에서 왕과 왕비 사이를 교묘히 이간질시키기도 하고, 자신이 위기에 처했을 때는 얼른 그 둘을 화해시킬 줄도 안다. 그리고 비록 다른 편이지만, 뛰어난 인물은 자기 편으로 잡을 줄도 아는 인물이다. 그리고, 자기 밑에 있지만 언젠가 해가 될 인물은 제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도 없앨 수 있는 인물이다. 그의 밀정인 밀레디가 자기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버킹엄 공작을 죽였듯이. 밀레디는 버킹엄 암살 사주 뿐 아니라 그 이전, 이후에 저지른 일들이 모두 밝혀져서 다르타냥과 그 친구들에게 죽임을 당하지만. 밀레디가 만약 살아 있었더라면, 추기경에게도 상당히 걸림돌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추기경이 누군가를 시켜 그녀를 죽이지 않았을까.


 추기경의 장점은 닮고 싶지만, 무서운 면은 닮고 싶지 않다. 추기경도 추기경이지만, 다르타냥도 추기경 못지않은 인물이다. 출세를 위해 트레빌을 찾아가던 중에 한 건 ‘제대로’ 벌인다.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정식 총사들이나 근위대원에 뒤지지 않는 체력과, 뛰어난 머리로 이들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후에는 추기경의 힘으로 근위대 부대장까지 오른다. 그가 이렇게 되기까지는 아토스, 아라미스, 포르토스 삼총사의 힘이 컸지만,(뒤마가 소설 제목을 사총사로 바꿨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다르타냥이 총사대 부대장이 되는 것과 동시에 삼총사들은 제각기 흩어진다.
이런 허무한 결말이.
 

   “ 거 참 어렵네요!” 다르타냥이 말했다. “다른 친구들도 모두 거절했어요.”
   “  이봐, 친구, 그건 자네보다 더 적임자가 없기 때문이야.”
그가 펜을 들었다. 사령장에 다르타냥의 이름을 써서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럼 이제 나에게는 친구가 없는 거로군요.” 젊은이가 말했다. “아! 이제 남은 것은 씁쓸한 추억뿐…….”
 그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볼을 따라 두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자네는 아직 젊어, 젊고말고.” 아토스가 대답했다.
“자네의 씁쓸한 추억이 달콤한 추억으로 바뀔 시간은 충분하네!”
                                                                       (3권, 추기경의 사자 중에서)


달콤한 추억도 있고 씁쓸한 추억도 있는 법이다.
 나에겐 어떤 추억이 더 많은지. 그
리고 나의 씁쓸한 추억이 달콤한 추억으로 바뀌게 될 때는 언제일까

신경숙, 엄마를 부탁해

신작 장편 『엄마를 부탁해』는 특유의 탁월한 감성과 문체로 다시 한번 독자의 심금 을 ... 엄마를 부탁해 저자 신경숙 지음 출판사 창비 펴냄 | 2008.11.10 발간 ...

 


모 소식지에 연재가 될 때만 해도

설마 이 책이 그렇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까란 생각을 했다.
아마도 내가 이 작가를 잘 모르기 때문에 이런 생각이 든 것 같다.
또, 독서도 편식을 하는 탓에 잘은 모르지만,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 대중 소설들이 내용이 불륜을 담고 있는 것들도 있기에.
오히려 이런 순수 무공해 소설들이 뜨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어느덧 이 소설은 상반기 베스트 셀러 목록에도 올랐고,

드라마로도 제작된다는 말을 얼핏 듣긴 들은 것 같다.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고. 리스트의 말로 시작하는 소설.
결국 작가는 본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에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써 놓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장의 '엄마를 잃어버린 지 1주일째다'라는 부분부터,
에필로그의 '엄마를 잃어버린 지 구개월째다' 라는 표현이 안타까움을 더해주었다.

 1장은 큰딸 지헌, 2장은 큰아들 형철, 3장은 남편, 4장은 ‘엄마’ 본인, 에필로그는 다시 지헌의 시선으로 이어지는데..
각각 화자를 바꿔가면서 이어지고 있었다. 꼭. 추리소설처럼 ..각각 화자를 통해서 '엄마' 의 새로운 모습이 드러나고 있었다.
  그들은 엄마를 찾을 '뻔' 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전단지를 보고 당신들의 잃어버린 엄마 같다고
 전화한 약사는, 그의 말로는 일주일 전에나 봤다는 엄마는, 사진 속의 단정한 차림이 아닌, 때에 절은 옷에, 그것도 다친 발가락이 보이는 파란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고 했다. 파란 슬리퍼, 다친 발가락. 이게 무엇일까.

그런데 특이한 것은, ‘나는’ 혹은 ‘그는, 그녀가 무엇무엇 했다’ 가 아니라 '너는 무엇무엇 했다' 라고 서술하면서,
독자로 하여금 엄마를 잃어버린 가족들을 바로 옆에서 보는 듯한 느낌. 그러면서 동시에 그 가족 구성원의 심리상태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시킬 수 있게끔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2인칭 소설이라고 해야 하나? 2인칭 소설이 있다는 말을 듣지 못한 것 같다.

펼쳐두기..



 

 

 

↑위 부분은, 엄마도 갖고 싶은 것이 있고,, 가고 싶은 곳이 있다는 것. 지헌 엄마, 형철 엄마가 아니라, '박소녀' 라는 여자라는 것. 그리고 누군가의 딸이라는 것. 잊고 있었지만 새삼 깨닫게 되는 부분이었다.


9개월 후 지헌은 정말로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에 가게 되었고, 거기서 피에타 상을 보았다.
죽은 아들을 무릎에 누이고 내려다보고 있는 성모의 모습과,
어느 날 가을, 말도 없이 고향집에 내려갔다가 평상에 쓰러진 엄마를 부축하는 지헌의 모습이 겹쳐졌다.


 
+) 책날개 그림은 꼭 밀레의 그림 같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알고보니 달리의 그림이었다.

2009년 6월 20일 토요일

윤고은, 무중력 증후군

-무중력증후군(띠지포함).jpg

이미지출처 : www.hanibook.co.kr


한줄평 : 신선함. 재기발랄함. 어떤 주제를 너무 가볍게 그렇다고 너무 무겁게 다루지도 않은 것

#1. 주인공 이름을 보고 크게 웃을 뻔했다. 하고많은 이름중에 ‘노시보’ 라니.
어쨌든. 시보는 강남의 모 부동산 회사 과장이고, 그의 일과는 출근해서, 전화번호부를 뒤져서,
전화번호부 상에 등록된 고객에게 땅을 팔아야 하는 것이다.
그는 ‘25세 노시보, 땅 팔다 죽다’ 라는 재미없는 묘지명을 꿈꾸던 사람이었다.
또 안 아픈 데가 없어서 한의원, 치과, 양의원 등 골고루 드나들었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무어라고 정확하게 진단을 내려 주지 못했다. 그리고 그는 퇴근 시간, 혹은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수시로 건물 안의 병원을 출입한다.(참. 이 건물 안에 모든 것이 있어서 사람들은 밖에 나갈 필요가 없다)

아마도, 현대인의 스트레스성 질환 - 뚜렷한 이유는 없지만-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픈 원인을 짚어 말할 수는 없었다.
혹시 난 그가 진료 중독증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봤다.


#2. 그런 시보를 회사에 늘 지각하게 만드는 건 다름아닌 ‘뉴스’ 였다.
시보는 TV, 컴퓨터에도 모자라서 휴대폰으로까지 뉴스를 받아보는 뉴스 중독자였다.
어느 날 ‘두 번째 달’ 이 떴다는 보도가 있었고, 그 뉴스를 접한 사람들은 하나둘씩 변해 버렸다.

신체 상의 변화로 병원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한편으론 ‘중력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모임’,
이름하여 ‘무중력자들의 모임’ 이 생겼고, 무중력자들의 집회가 열렸고, 무중력자라고 ‘커밍아웃’하고,
달로 여행을 가겠다고 고층 건물 옥상에서 점프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현재 시국관련 집회가 많이 열리고 있는데.. 소설에서도 '집회' 하니까.
현실과 소설 내용이 크로스가 되어 내 눈앞에서 돌아가고 있었다.
한쪽은 현실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반성, 성찰을 다룬 '집회',
다른 한쪽은 소설 속의, 무중력자들의 모임이라는,
왜 달로 가야 하는지 역설하는.조금은 색다르고 특이한 집회.)


이런 시류에 맞추어, 시보네 회사에서는 모든 것을 ‘달’에 맞추어서,
달의 지가는 지구의 1/6 이라고 고객들에게 홍보 전화를 돌렸다.

시보네 가족 역시 이러한 변화 앞에서 예전과 다르게 변해 버렸다. 그리고 시보의 절친인 구보 역시 마찬가지였다.
(박태원의 구보씨가 여기서도 등장하는구나,
몰랐는데, 이 책을 보니까 1930년대의 구보씨는 현대소설에 이르기까지 네 번 등장했다고 한다)

또, 시보는 헤어진 연인 미아에 대한 그리움을 잠시나마 떨칠 기회를 얻었지만, 그 결과는 씁쓸했다.
그를 이용한 기자, ‘퓰리처’(본명이 있지만 시보는 그녀를 퓰리처라고 불렀다)는, 능수능란함 그 자체였다.

#3. 곧 이어 세 번째 달, 네 번째 달이 뜨고, 이제 달은 그저 그런 뉴스 거리가 되어 버렸다.
달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질 무렵, 시보는 자신이야말로 정말 ‘무중력 증후군’ 환자임을 알게 되었는데,
그가 가는 병원마다 , 이 위대한(?) 원조를 몰라 보고, 진단도 대강대강 내려 버렸다.


     (289-290페이지 중.
    긴 봄, 정말 달이 늘어났던 것일까. 우리의 상상력이 늘어났던 것일까. 어디선가 또 하나의 달이 떠오른 것이 아닐까. 양치기의 거짓말에 지쳐 진짜 늑대는 보지 못한 사람들처럼. 어딘가 진짜 달이 떠오른 것은 아닐까. 진짜 두 번째 달 말이다. 어쨌거나 그 모든 것들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이 사회의 거짓말이 어떤 증거도 남기지 않은 것처럼 어쩌면 달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범죄를 계획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들킬 때까지 계속할 거짓말을.



#4. 실제로 지구를 휩쓸었던, SARS, 조류독감, 스페인 독감,  그리고 지금 유행하는 신종 플루, 수족구병 등등.
 이런 것처럼.  위의 ‘무중력 증후군’도 사람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들이 아닌 일부의 사람들. 에게 그런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위의 질병들은 전 인류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지만,  무중력 증후군은 일부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었을지 몰라도,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두려움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것, 호기심의 대상이었다고 생각한다.  자기 몸에 변화가 생기고, 혹은 무중력자라고 커밍 아웃하고, 직장에 사표를 던지는 사람들. 달 구경만 하고 오겠다는 사람들. 며칠씩 실종된 사람들. 그리고, 달로 가겠다고 몸을 던지는 무모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 앞에서,
행정부는 어쩔 줄을 몰라하였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에 나오는  백색 실명, 백색 공포처럼 실체가 없는 그 어떤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무언가 실제로 존재하고 휩쓸고 지나가지만, 정작 그 바람을 맞지 않은 사람들. 다행히도,  눈이 멀어버리는 것을 피한. 사람이 있지 않았는가.

 그리고, 지금 전 세계를 휩쓰는 병들, 분명히 실체는 있다.  뉴스에서 전 세계적으로 몇 만 명이 감염되었고, 혹은 어떠한 병으로 몇 만이 숨졌고, 하는  기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정작 내 가까운 주변에는 그런 일이 없기에, 과연? 하는 생각이 몇 번씩 들고,  그러면서도, 언제 어떻게 될 지 모르니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은 들고. 그런 것이다.
 설 속에서는, 녹색 글상자에 인용한 말처럼.
 '달이 늘어났는지, 사람들의 상상력이 늘어난 것인지는 알 수 없는' 것이지만.

지금 내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내가 겪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의 상상력이 늘어나서 빚은 결과는 결코 아니기에.

현실을 제대로 봐야겠다는 생각이 , 들었다.


새벽세시, 바람이 부나요

#1. 읽으면서 며칠 전에 길가에서 들은 터보의 'cyber lover' 가 생각났다.

  속상했던 일이 생겨도/마음이 서글퍼질 때도/너와의 얘기속에 어느샌가 사라져/ 왜 내 마음이 설렐까/
  아직 한번도 만나지 않았는데/ 어떻게 내게 이런느낌 생길수가 있을까/...

처음 이 노래를 들었을 땐 이게 무슨 소리야 했는데,
지금 들으니 어쩌면 이럴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노래와 소설은 차원이 다르지만)

#2.잘못 걸려온 전화, 잘못 들어온 문자,
혹은 잘못 들어온 이메일. 당신은 이럴 때 어떻게 하는가?
그냥 무시하지 않나? 나 같아도 신경 쓰지 않겠다.

 그 여자, 에미 로트너,
직업상 홈페이지 관리를 하고 있었다.
잘못 보낸 메일 한 통 때문에 레오 라이케를 알게 되었다. 

그 남자, 레오 라이케.
대학교 언어심리학 조교수이자 커뮤니케이션 카운슬러.
 이메일이 사람의 감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 중이었다.


#3. 특이하게도 이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메일 내용으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에미의 완벽한 가정에 과연 무엇이 부족한 것인지 생각해 봤는데, 결국 이거였구나.
미아나 소냐나 베른하르트나 마를레네나.
결국은 레오와 에미의 관계를 더욱 부각시키기 위한 소모품(?)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세계는 철저히 레오와 에미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계였다.
그들 중심으로 돌아갈수록 바깥 세상으로부터 소외되어
서로에게 집착하게 되는. 그런 세계.

스포일지는 모르지만. 에미와 레오가 실제 오프라인에서 만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레오 말대로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순간, 온라인에서 지속되는 관계는 끝이라는 것을.
하지만 절정으로 갈수록 그들은 서로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를 거부하면서도 한편으론 서로를 원한다.
제목 그대로 새벽 세시까지 마치 탁구공이 왔다갔다 하듯, 끝없이 말을 주고받는다.
바람이 부나요 ? 라고 까지 물어가면서.

우리는 환상 속의 가상 인물을 만들어내 서로에 대한 몽타주를 작성하고 있어요.
질문을 하지만 답을 들을 수 없다는 게 그 질문들의 매력이죠. 그래요,
우린 서로의 질문에 곧이곧대로 대답하는 걸 피하면서
상대방의 호기심을 자꾸 자극하고 계속 부채질해대고 있어요.
우린 행간을 읽으려 애쓰죠. 상대방을 정확하게 평가하려고 안간힘을 써요.
그러면서도 자신의 본질적인 면만은 드러내지 않으려고 철저하게 조심 또 조심해요.
‘본질적인’ 것이라는 게 뭘까요? 우린 자기 생활에 대해 얘기한 적이 없어요.
자신의 일상을 이루는 것들에 대해, 자기에게 중요한 무언가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지요. (레오)


아. 이 불륜 커플. 뭐냐. 그런 그들의 이야기는 독자를 붙잡고 놓아 주지 않았다.
이런 이야기가 나중에는 조금 지루하기까지 느껴 졌던 건. 왜일까?

매 순간 순간, 손과 머리를 이용해서 빚어내는 언어들의 조합에
매료되었는데도 . 왜 그런 건지 모르겠다.

레오. 당신은 정석을 따르지 않으면서도 자극히 목표 지향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고,
그게 저를 점점 긴장하게 만들어요. 당신은 나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하면서
동시에 아무것도 알고 싶어하지 않죠. 당신은 그날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저에게 ‘미칠 듯한 관심’을 나타내기도 하고 거의 병적인 무관심을 드러내기도 해요.
그리고 그게 저를 번갈아가며 화나게 하기도 하고 유쾌하게 만들기도 해요.
지금은 솔직히 말해 유쾌한 쪽이죠. (에미)

에미, 우리가 이메일을 사흘이나 쉬었군요.
슬슬 다시 시작할 때가 된 것 같은데요.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당신 생각을 많이 해요. 아침에도, 낮에도, 저녁에도, 밤에도,
그리고 그사이의 시간과 그 바로 앞, 바로 뒤 시간에도.
다정한 인사를 보냅니다. 레오


#4, 결말. 반전. 그리고 끝.
조금은 허무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여태까지 이들이 나누었던 언어는 레오 말대로 자판을 훅 불고, 컴퓨터 전원을 끄면 사라지는,
그런 것이었나.

누군가 마음이 통하는 상대를 찾았다는 건. 좋은 일이다. 그렇지만,
그 마음이 통하는 상대를 단순히 찾은 것을 넘어. 사랑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글쎄. 아직 잘 모르겠다.


2009년 6월 17일 수요일

'7번 국도' 감상문.

#1. 1991년에 무슨 일이 있었더라?여기 주인공은 넷이구나.시인 기형도가 왜 등장하지?
그리고 그 외 노래들은?7번 국도는 정말 있는 것일까?
등등. 책을 읽기 전, 읽는 중, 읽고 나서 든 생각들이다.

우선 이 소설의 내용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길 위의 나날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와 ‘재현’이가 자전거 여행을 떠나게 된 이유와, 7번 국도 상의 관광명소들,
그리고 3각관계,
각 등장인물들의 과거사가 합쳐진 소설 ‘7번국도’는 좀 복잡하다.

자전거 여행은 서로의 상처를 안고 출발한 여행이었고,
길 위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환상을 보았다.

7번 국도는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도로이면서, 뒈져버린 나무 이름이면서, 카페 이름이면서 ,
또 누군가의 이름이기도 하다.
 
#2. 작가의 최근작을 먼저 읽고 나서 초기작을 보는데,
 초기작은 어떨까 하는 기대 하에 열어 봤다는 것,
그러나 초기작도 읽기 쉽지는 않았다.

소설 속에서는 비틀즈의 노래와 팝송과,
기형도와 그 외 다른 시, 노래가 한데 섞여 있어서
 어느 페이지를 읽을 때는 꼭 신인 가수의 앨범을 듣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재현이 내게 퍼부은 욕설마저도 욕을 넘어서서 잠깐 시적으로 들렸던 건,
지면 구성이 이래서였을까,
 아니면 그냥 내가 그렇게 생각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와 재현은 무사히 자전거 여행을 마치지만,
이 곳에서 그들이 모를 누군가들이 수없이 많은 사고로 죽었다는 것은,
꼭, 거짓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 실린 시나 노래에 대해서는 작가가 직접 해설을 달아 놓았다.
 
몇 페이지까지 읽었는지 생각이 나지 않아,
다시 앞에서부터 읽어보니 무겁게만 느껴지던 소설 속에
약간의 위트와 유머도 섞여 있었다.
 
+) 7번 국도는 실제 지명이었다.

++) 기회가 된다면 자전거 여행도 해 보고 싶다는 것.

2009년 6월 8일 월요일

'글쓰기'와 '어린 왕자'

#1.'제대로 된' 글쓰기 수업은 받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상태에서 시행 착오를 반복하면서 혼자 글을 쓰고, 지우고, 그렇게 된 것 같다.

초등학교 때, 어떻게 하다가 일기상을 받았다. 딱히 일기 쓰기 지도를 받은 것도 없었다.
그 때의 일기는 그저 그런 일 투성이었다. 크게 기억나는 것은 없다.
그래도 운이 좋았는지 교지에 너무나 짧은 글이 한 편 실렸고,
(한 반에 몇 명씩은 들어가야 했기에 무작위로 고른 것이리라.)

문예반 활동도 하였지만, 그 뿐이었다.
딱히 칭찬을 들은 것도 없었다.

중학교 때, '다 쓰고 나서 보니 나도 모를 말을 써서 너무나 창피했던'
독서 감상문을 스피커 앞에서 전교생들에게 낭독을 한 적도 있고,
고등학교 때는 별 다른 것은 없었다. 워낙에 공부를 잘 하는데다 글까지 잘 쓰는 애들이 많아서
그쪽 동네에는 내가 들어갈 틈조차 없었다. 둘 중에 하나라도 잘 했으면 들어갈 틈이 있었을까?


그리고 대학에 와서 들은 문예창작 강의,
그 전에 대학 논술 준비하느라 급하게 들은 강의 말고는
따로 글쓰기 학원을 다닌 적은 없었다.


#2. 어린 시절의 반 정도는 '어린 왕자'가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생각해보니 아버지와 같이 봤던 '어린 왕자'는, 일종의 논술 교재였다.
왜 이런 걸 하는지, 바오밥 나무가 내 속에 자란 나쁜 버릇이니 뭐니 하는 말이
귀에 들어오지도 않을 때였는데,
작은 공책을 하나 준비해서 거기에
 어린왕자 몇 페이지에 나오는 무슨 내용이 뭐 라고 생각하는지 써 보거나 혹은,
설명을 받아적거나 하는 등. 동생은 동시집으로 했지만, 왠지 그 때 그 책이 끌렸다.
그래서 고른 것이었다. 하지만 바오밥 나무를 끝으로 논술 수업은 끝났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몇 년 후, 서점에서 '다시 만난 어린 왕자'라는 책을 보았다.
생텍쥐페리의 후배(?) 작가가 쓴 책은,
원본 어린왕자와는 또 다른 패러디와 역설(?역설이 있었나? 다시 찾아 봐야겠다),
비판(이것도..찾아 봐야겠다) 등으로 가득 차 있었다.
뒤에 해설을 보면서(지금 봐도 모를 말을 그 때는 무슨 재미로 읽겠다고 덤볐는지. )

불확정성 시대? 이게 뭐지? 하면서 넘겨 버린 것들.
나중에 좀 이해할 만한 나이가 되면 다시 읽어 봐야겠다 하고

원본을 다시 읽었다. 얇은 책이지만, 몇 번을 읽어도 질리지 않는 책이었다.
-가장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나는 세 시 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사막이 아름다운 건 그것이 어딘가에 샘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지
-길들인 것에 대해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게 되는 거지

등등.
밑줄을 긋고 싶은 문장은 참 많았다.
 하지만 그 중 가장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나는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이 부분이었다.

당신이 네 시에 오는데 왜 나는 벌써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하는 걸까 하고. 정말 그 땐 그런 것도 모를 때였다.
 

하지만 이젠 알 것 같다.

더 중요한 것은. 10년도 전에 이미, 짧지만 논술 수업을 했다는 것을. 이제 알았네.


#1. 의 첫번째 줄은 바꿔야 겠다.

약식으로나마 글쓰기 수업을 했었다고,
그런데 그 교재가 어린 왕자였다고.


너무 오래 전 일이라 약효가 나타나지  않지만.. 말이다.

* 짧지만 의미 있는 시간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지 .

2009년 6월 6일 토요일

20090606

-내 블로그의 베스트 포스트는 어떻게 선정이 되는 것인지, 궁금하다.

 

티스토리와 이 곳은 둘 다 조회수를 알 수 없다는 것이 장점이자 단점(?)인데.

 

어떤 기준으로 베스트 포스트가 선정이 되는 것일까?

 

 

-쓰면 쓸수록 왠지 자폐적인 공간이 되어 간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누군가 들어오는 사람은 좀 있는 것 같은데,

 

반응이 없다.

 

 

지극히도 당연한 말만을 써 놓아서.?

 

아니면, 전혀 공감할 수 없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