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1일 토요일

이런.

http://blog.textcube.com/91

텍큐닷컴과 블로거가 통합된단다.

 

가입해놓고 한달에 한 번도 들어오지 않은 적도 있고.

몇달간 버려놨다가

뭔가 쓰려고 한꺼번에 글을 여러 번 올린 적도 있고.

불편한 점도 적지 않았지만 나름 괜찮았는데,

아쉽다.

 

블로거닷컴은 그냥 안 쓰고 있었는데..

(그 게시글 밑에 댓글들을 보니까 서비스가 좀 아닌 듯.

하지만 그것 때문이 아니라 그냥 쓰지 않았던 것일 뿐)

블로거닷컴 유저가 아니더라도 다른 데로 이전할 수 있게 지원을 제공한다는데..

휴.:::

 

현재 쓰고 있는 블로그는 이것 말고도 또 있지만,

그것도 나중에 텍큐처럼 된다면?
그러면 또 이사를 가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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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것을 떠나서

갑자기..

내가 쓰고 있는 블로그들이 어떤 목적으로 운영되는지.

그 중에 정말 건질 만한 자료는 얼마나 되는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2010년 4월 11일 일요일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먼저 읽어봤던 로드와는 많이 다르다. 마치 범죄영화를 보는 듯했다.
작가가 참 불친절하다. 이 장면 저 장면이 무작위로 나온다.
뭔가 생각을 하려 하면, 장면을 눈앞에 그려보려 하면  바로 다음 장면이 등장하고,

또 다른 장면이 나오고 그렇다.


독자가 알아서 판단해야 한다. 헷갈린다.

코언 형제는 어떻게 이걸 영화화했을까 ?
전체적으로 음울하다.  스릴러지만 그냥 스릴러와는 또 다르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길게 이어지는 대화체에,
사람 목숨 갖고 노는 범인. 어차피 죽일 거면서 말을 길게 하고, 퀴즈를 낸다.
동전의 앞면이 나왔는지 뒷면이 나왔는지 맞추라고 한다.

보안관 벨, 범죄자 시거, 총잡이 모스가 서로 쫓고쫓기는 장면을 보면서  

 21세기형 서부활극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트랜스폰더 때문에 어디 있는지 바로바로 노출되는 상황이니 말이다.



제목은 예이츠의 시(비잔티움으로의 항해) 한 구절에서 가져왔다는데
예이츠도 이 시도 잘 모르겠다. 단지 각운을 맞춘 것에 감탄했을 뿐. 그 이상은 모르겠다.

풍자용일까?
사건 하나 제대로 해결 못하는 경찰과 보안관에 대한? (실제 미국사회가 그런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도대체 노인은 누구일까? 벨의 아저씨? (벨이 말하는 가족관계도 분명치 않지만,

아저씨라고 나오니까)
아니면 서서히 나이가 들어가는 벨?

젊은 놈들이 총질이나 하는 나라에서는  무서워서 도저히 살 수가 없다는 것 ?
노인은 사람이 아닌 어떤 다른 것을 상징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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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상자 내용은 책 전체의 내용과는 조금 상관없는 것 같았지만 마음에 들어서 살짝 가져온 부분

 

  거짓만 말하고 그것을 잊는다 해도 진실은 남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진실은 여기저기로 움직이지 않으며 때에 따라 달라지지도 않는다. 소금에 소금을 칠 수 없듯이 진실을 더럽힐 수는 없다. 진실은 그것이 진실이기에 더럽힐 수 엇는 것이다. 우리가 항상 하는 말이 진실에 관한 것이다. 진실을 바위에 비유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아마도 성경에서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바위가 사라져도 진실은 남으니 말이다. 물론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꽤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믿는 게 무엇인지 나는 결코 알 수 없었다.

                                                            -5부 중-

2010년 2월 25일 목요일

2010년 2월13일

영화, 책들...
연초에 짬짬이 보고

연휴때도 조금 보고


얼마나 더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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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타, 용의자 X의 헌신, 바티스타 수술 팀의 영광, 대륙의 영혼 최재형, 12인12색(아직 읽는 중)

2010년 2월 5일 금요일

쥐의 똥구멍을 꿰맨 여공

읽으면서 어쩐지, 내용이 낯이 익다 했다.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하 상절지백)의 업데이트 판이라 한다.
읽은 지 오래 되었지만 어딘지 상절지백의 냄새가 난다 했다.

머리를 굴려야 할 정도의 책은 아니다. 일종의 상식 나열 사전 같다.
아는 내용이 나오면 '아~' 하면서 넘기고, 모르는 내용이 나오면 '음, 이런 것도 있네' 하면서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책이었다.


그런데 왜 제목이 하고 많은 항목 중에.. 그렇게 된 건지는 모르겠다.
읽고 나서 얻은 결론은.
결국 이 책 내용은,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들. 혹은 새롭게 알게 된 사실들의 나열이라 할까.
나열을 하되 나름대로 독특하게 구분을 지은 것 같고,
서문도 조금은 독특하게 쓰여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읽다가 맘에 든 부분이 있어서 살짝 가져왔다.

 


펼쳐두기..

접기

의사소통의 문제.관점의 차이.
둘 다 중요한 것 같다.

 

특히 '소통'이란 코드는 요 몇 년 간 중요시되었던 것이기도 하고.

 

만약 내가 누군가와 같은 사건을 바라보면서도  생각이 다르다면

의사소통이 잘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서로를 바라보면서 말한다고 해도

결국은 다른 것을 말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고.

북극의 연인들

  멜로드라마가 꼭 비극으로 끝나야 된다는 법도 없고, 반대로 희극으로 끝나야 된다는 법도 없다.
하지만 그것이 비극이든 희극이든 끝나고 나서 그 여운은 은근히 오래 간다는 생각이 든다.

 구성과 전개가 독특했던 영화라, 그 흔한 '사랑'을 가지고 만들어졌지만.
보면서도 전혀 흔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터였다.


 '비극'이라고 미리 신문에서 봤는데, 신문 내용을 잊어버렸고,  

영화를 보고 나서 다시 신문을 펼쳐 보았다.
신문지상에 나오는 말로는 , 비극이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다.
영화 중간중간에 평가하려 하지 말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때에 그 여운을 느껴보라고 했다.


무슨 말인지, 영화가 끝날 쯤에 알게 되겠지 하고 일단 보기 시작했다.


 영화는 두 주인공. 오토(Otto)와 아나(Ana)의 관점에서 각각 전개된다.
그들은 같은 사건에 대해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고, 서로 다르게 바라본다.
그런 전개 방식이 독특하기도 했지만, 영화에 몰입하는 데 방해가 되기도 했다.
계속 바뀌는 장면들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관객이 계속 생각을 하게끔 만든다.
끝날 때쯤 알게 될 것이라고 미리 말을 하면서도.



  특이하게도 이 둘의 이름은 앞에서 읽어도 뒤에서 읽어도 같다.그러한 공통점 때문에 끌렸을까?
그래서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서로를 끌어당기는 힘이 그렇게 강했던 것일지.

아니면  아나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정말 '우연히' 아나 앞에 나타난 오토 때문에,  아나가 오토를 운명이라고 생각하게 된 걸까?


(문득, 영화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사람들은 결국은 비슷한 사람들에게 끌리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끝없이 그리워하지만 결국 안 되는 사랑이 있었으니. 아나와 오토를 가로막는 '장벽'이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지척에 있으면서도 지나치게 되었던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나가 교수에게서 담배를 얻어 피우는 바로 뒤에서, 오토는 신문의 구직란을 뒤지고 있었고,
구직란에서 조종사를 구한다는 광고를 보게 되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오토의 할아버지 역시 조종사였다.
그러나 그는 그냥 조종사가 아닌, 군인이었고,

2차대전 때 발 밑 아득한 곳에 폭탄을 떨어뜨려야 했던 사람이었다.  

반면에 오토는 단순 우편 배달부였다.



  같은 장면이 여러 번 나오고, 해석은 시청자가 하고.한번만 나오면 왜 그런지 모르니까.

계속 묻게 될까봐 그런 것이었을까?
처음에 신문지가 마구 날리는 것을 보고 내용을 짐작은 했지만,판타지적인 요소도 있었고

(이를테면 스키를 타고 위로 올라가는 남자 등)
이해할 수 없는 장면도 있었고. (어린 오토가 아빠 뺨을 때리는 장면이라든지)


빨간 버스인지 전차인지 모를 것이 계속 나오고

 비극이네. 하면서도 이상하게.. 별로 슬프다는 생각도 들지 않고.
슬프다기보다는 뭐라할까. 안타깝다는 생각만이 들었다.
단지 아나가. 조금만 신중했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아나의 눈 속에 담긴 오토의 모습 .
솔직히 그 장면은 안타까움을 넘어서서 공포까지 불러일으켰으니.

 

일곱 번째 파도(다니엘 글라타우어)

일곱 번째 파도. Alle sieben wellen
작년에 읽었던 <새벽세시, 바람이 부나요?>의 후속편이다.

 잘못 보낸 이메일로 시작된 낭만적인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개인적으로는 <새벽세시.>의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검색을 하다 이 책을 찾게 되었고, 찾아 읽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렸다.


  작가는 후속편을 쓰지 않으려 했는데 팬들의 요청으로 인해 2편을 썼다고 한다.
2편을 읽으면서 이 두 사람이 밀고 당기기를 너무 오래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중간도 못 가서 결말이 어떻게 되나 하고, 뒤를 봐야겠다. 지겹다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남들의 이야기를 인내심 있게 듣지 못하는(?)건가. 나와는 상관없는 남들의 이야기를, 줄글의 연속을 보고 있어서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레오는 에미에게 묻는다. 당신에게 부족한 게 무엇인지, 그리고 기타 다른 것도 묻는다.
그들은 하루에 한 가지씩만 묻기로 규칙을 정하지만 때론 규칙을 깨기도 한다.
처음엔 아래처럼 많이 물어보다가, 규칙을 정한 것이다.

   세번째 항목입니다. 당신에게 부족한 게 뭔가요? 내가 당신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뭐죠?
내가 당신에게 무슨 소용이 있나요? 내가 당신에게 어떤 존재여야 하나요?앞으로 우리 관계는 어떻게 될까요?우리 관계가 계속되어야 하나요? 계속된다면 종착역은 어디일까요? 우리는 어디로 가는 거죠? 당장 대답하라고는 하지 않을게요. 며칠 여유를 가지고 생각해봐요. 여유를 가져서 나쁠 건 없으니까요. (106쪽)



  그에 대한 에미의 대답은 이랬다.

   왜 당신에게 메일을 쓰느냐고요? 그럴 마음이 내켜서요. 그리고 일곱 번째 파도를 말없이 기다리고 싶지 않아서요.  이곳 사람들은 무척이나 거칠고 고집스러운 일곱 번째 파도가 있다고들 해요. 처음 여섯 번의 파도는 예측할 수 있고 크기가 엇비슷하대요.  연이어 이는 여섯 번의 파도는 깜짝 놀랄 만한 일 같은 건 만들어내지 않아요. 일관성이 있다고나 할까요.  여섯 번의 파도는 멀리서 보면 서로 다른 것 같기도 하지만 늘 같은 목적지를 향하죠. 그러나 일곱 번째 파도는 조심해야 해요.
  일곱 번째 파도는 예측할 수 없어요. 오랫동안 눈에 띄지 않게 단조로운 도움닫기를 함게 하면서 앞선 파도들에 자신을 맞추지요. 하지만 때로는 갑자기 밀려오기도 해요. 일곱 번째 파도는 거리낌 없이, 천진하게, 반란을 일으키듯, 모든 것을 씻어내고 새로 만들어놓아요. 일곱 번째 파도 사전에 ‘예전’이란 없어요. ‘지금’만 있을 뿐. 그리고 그뒤에는 모든 게 달라져요. 더 좋아질까요, 나빠질까요?
그건 그 파도에 휩쓸리는 사람, 그 파도에 온전히 몸을 맡길 용기를 가진 사람만이 판단할 수 있겠지요(255-256쪽)

  본문에서도 인용했듯이. 일곱 번째 파도는 예측할 수 없는 파도라고 했다.
그러나 그 다음 순간, 에미는 일곱 번째 파도라는 것은 없었다고, 환상이었다고 말한다. 이럴 수가.
 그런데 읽다가 일곱 번째 파도의 전설이, 7이라는 숫자가.
 조금 다르게 본다면 꼭 그들의 오프라인 모임 횟수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에미가 일곱 번째 파도의 전설을 말해 주는 곳은 베른하르트와 다시 합치려고 갔었던 휴양지에서였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이혼을 하고, 레오는 자신이 사랑하려고 '노력'했던 사람과 결별하게 된다 . 이리하여 에미와 레오가 맺어지게 되었다.   결론은 해피 엔딩인데. 에미와 레오의 입장에서 본다면 잘 된 건데 주변인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씁쓸하고 잘 못 된것이다. 한편 , 이들의 이야기는 마치 밤부터 새벽까지 이어지는, 몇 시간째 계속되는 채팅을 보고 있는 듯한 생각도 들었다. 실제로는 거의 2년 가까이 걸렸지만. 결말이 나 버린 마당에 이 이야기는 꼭 하룻 밤 사이의 채팅 같았다, 읽고 나니 전반부보다는 후반부 내용이 생각이 더 많이 나는 것도 있었고. 이들의 만남이 이루어진 계기는 통신의 발달이라는 것도 한 몫하지 않았나 하는 당연한 생각도 들고,

  이메일이 아니고, 아마 손편지였다면?
 에미 성격상 답답해서(?) 기다리기 힘들어 하는(?) 것이 더 심하게 나타나지 않았을까.
아니면 이야기를 조금 다르게 이끌어나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결론을 내린다면. 결국 만날 사람은 어떻게든 만난다는 것과,
주인공들의 사랑이 이루어지기 위해 주인공 주변인물들이 피눈물(?)을 흘릴 수도 있다는 뻔한 결론이다.

+)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것이 일반화된 시대에 조금은 고전적인 사랑 이야기를 만나게 되어 외려 신선한 느낌도 ...

더 로드<The Road>중.

  모든 것이 축축했다. 썩어가고 있었다. 서랍에서 초를 하나 발견했다. 불을 붙일 방법은 없었다. 남자는 초를 호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는 회색 빛 속으로 걸어나가 우뚝 서서 순간적으로 세상의 절대적 진실을 보았다. 유언 없는 지구의 차갑고 무자비한 회전. 사정없는 어둠. 눈먼 개들처럼 달려가는 태양. 모든 것을 빨아들여 소멸시키는 시커먼 우주. 그리고 쫓겨다니며 몸을 숨긴 여우들처럼 어딘가에서 떨고 있는 두 짐승. 빌려온 시간과 빌려온 세계 그리고 그것을 애달파하는 빌려온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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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 31일 밤부터 2010년 1월 1일 새벽까지 읽은 책.
그러나. TV 채널돌리기, 컴퓨터를 하는 바람에 읽는 데 집중하지 못하고 조금 오래 걸린 것 같다.
읽고 나서 검색해보고 알게 된 사실인데,
곧 영화로 나온다고, 감히 성서에 비견된다고,
폐허와 고독, 절망에 대해 잘 그려낸 작품이라고 찬사 받는 작품이라는데,

세상의 끝에서 자신이 제일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려고 애쓰는 것. 그 노력이 눈물겹다.
세상에는 모성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부성도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이었고,
나에겐 모든 것을 걸어서라도 지키고 싶은 대상이 있는지 하는 생각도 드는 것이었다.

읽으면서 안데르센 동화들 중 하나가 문득 생각났는데...두꺼비가 나오는 동화였던 것 같다.
그런데 그 많은 두꺼비들 중 단 한 마리가 머릿속에 보석이 있는데 (뭔가 다른, 특별한 존재라는 뜻?)
나중에 죽을 때 머리에서 보석이 나온다..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

로드에서도 아버지는 아이에게 네 눈 안에 '불' 이 있다고. 우리는 '불을 운반하는 사람' 이라 했다.
아이의 눈 속에 있는 불과 두꺼비 머릿 속에 있던 보석이 똑같이, 일종의 귀중한 것이라고 한다면 좀 무리일까?

불. 하니까 문득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메테스의 불.이 생각났다.

영화 예고편만으로는 제대로 알 수 없으나.
어느 면에서는 원작을 충실히 반영한 것 같기도 하고(화살 날아오는 장면 등)
어떤 장면은 좀 억지스러운(사실 여자(아마도 부인인 듯)는 영화에서 1분도 채 등장하지 않아야 할 텐데.
예고편에 좀 많이 등장하시는 듯. ) 것도 있다.

남자의 환상 속에만 보이고, 실제로 보이는 것은 사진일 뿐인데.
영화를 만들 때는 영화감독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었을 테니까.

본편을 보지 않아서 이렇게 쓰는 게 조금 무리일지도 모르겠다